입력 : 2012-12-24 18:28:29
크리스마스이브, 서울 여의도공원은 ‘솔로대첩’에 참가하는 남녀로 꽉 채워졌다. 페이스북에 올라온 ‘솔로들이 크리스마스에 모여 대규모 미팅 한번 할까?’라는 글이 이렇게 커질 줄 누가 알았을까. 지난 9월 열렸던 ‘T24 페스티벌’보다 더 많은 사람이 모여든 모양새였다.
12월 24일이 다가오며 인터넷에는 솔로대첩을 향한 기대와 동시에 우려도 많이 보였다. ‘남탕’일 것이라는 조소, 성범죄 등이 걱정된다는 지적, 크리스마스이브에 솔로들을 한 곳에 가둬두려(?) 한다는 의혹까지. 2012년 말 벌어진 이 대규모 행사는 어떻게 진행됐을까?
오후 2시 30분
여의도는 버스정류장, 지하철역 입구부터 여의도공원까지 긴 행렬이 이어졌다. 삼삼오오 짝진 사람들이 무리지어 공원을 향했고 곳곳엔 혹시 모를 범죄예방을 위해 나선 경찰관이 보였다. 날씨는 추웠지만 인연을 만날지도 모른다는 기대감 때문인지, 인터넷으로 정한 약속을 이루려 수많은 인파가 몰리고 있다는 것에 대한 흥분감 때문인지 다들 활기찬 모습이었다.
여의도공원에 다다를 때쯤 노란 옷을 입은 행사 스태프들이 다가왔다. 가슴에 솔로부대 완장을 단 이들은 ‘비밀지령’이라며 쪽지를 하나씩 쥐여줬는데, 쪽지엔 행사 참가 방법과 암호문이 적혀있었다. 행사는 ‘플래시 몹’ 형태로 3시 24분이 되면 알람과 함께 시작된다는 설명이다.
공원 양편에 서서 이성을 향해 달려가는 처음 기획과 달리 플래시 몹으로 바뀐 이유는 이번 행사가 쉽게만 진행되지는 않았던 탓이 크다. 너무 많은 인원이 참가신청을 내자 여의도공원 이용이 거절됐으며 난동이나 범죄에 관한 우려가 컸다. 하지만 플래시 몹으로 형태를 바꾼 덕에 어떤 법에도, 이를테면 도시공원법이나 집회・시위법에 저촉되지 않을 수 있었다.
여의도공원에는 이미 많은 인파가 몰려 행사 시작을 기다리고 있었으며, 구경 온 커플이나 후원 업체도 눈에 띄었다. 이 밖에도 손난로와 목도리를 파는 대학생들, 미처 드레스 코드를 맞추지 못한 이들을 겨냥해 붉거나 흰 액세서리를 파는 이들이 한데 뒤섞여 3시 24분을 기다렸다.
오후 3시 정각
3시가 되자 사람이 더 많아져 여의도공원 절반이 꽉 채워졌다. 광장 주변 언덕도 구경꾼으로 빽빽하게 채워졌으며, 취재 나온 기자들과 카메라 또한 많이 보였다. 비록 참가자 모두 예정대로 남성은 흰색, 여성은 빨간색을 맞춰 입지는 않았지만 목도리나 재킷, 신발 등에 색깔을 넣거나, 가슴에 스티커를 다는 등 마음껏 개성을 뽐냈다.
군데군데 연예인도 눈에 들어왔다. 참가자를 인터뷰하고 즉석 만남을 유도하는 등 축제 분위기를 흥겹게 달구는 모양새였다. 애초 재능기부 식으로 참가를 약속했던 연예인 상당수가 이날 얼굴을 비추지 못했지만, 약속을 지킨 이들이 있어 많은 사람이 즐거워했다.
오후 3시 24분
약속한 시간이 됐지만 너무 많은 사람이 몰린 탓인지 주최 측의 시작 신호 등은 기대하기 어려웠다. 아니 처음부터 신호는 없을 수도 있었다. 참가도 자유, 즐기는 방법도 자유. 각자 미리 설정해놓은 휴대전화 알람에 맞춰 행사를 즐기는 방식이었으니까. 문제는 역시 시야로, 광장에 들어서면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사람이 많아 갈팡질팡하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사람들은 각자 원하는 대로 축제를 즐기기 시작했다. 행동이 빠른 사람은 마음속에 점 찍어둔 이성에게 다가가 ‘작업멘트’를 던졌으며, 준비해온 장미꽃을 함께 건네는 로맨티시스트도 있었다. 어떤 용기 있는 여성은 주위를 향해 “저와 짝이 되실 분 손 들어보세요!”하고 외치며 보는 이들을 미소 짓게 했다.
처음에는 당연하게 생각했던 일정표가, 진행자가, 신호가 따로 없어 우왕좌왕했지만, 이는 이제 중요치 않았다. 꼭 플래시 몹을 하거나 행동지령대로 움직이는 건 불필요한 일이었다. 사람들은 그저 많은 인파에 놀라워하고, 혹여 맺어지는 커플이 있으면 주위를 둘러싸고 축하인사를 던지거나 악의없는 야유를 보내며 축제를 즐겼다. 아는 사람을 마주쳐 ‘너도 왔냐’며 쑥스러워하는 이들도 몇 번인가 보였다.
기타를 치며 길거리 공연을 시작한 학생들, 공원을 산책하며 사람들을 구경하는 커플들, “쟤 괜찮지 않냐?”며 이성 주변 맴도는 솔로들. 각기 나름대로 솔로대첩을 해석해 참가했다.
오후 4시 10분
사실 이번 솔로대첩은 과거 T24 페스티벌 때와는 달리 걱정이 참 많았다. 아마 이유는 어쨌든 행사 목적 자체가 ‘연인 찾기’기 때문일 것이다. 처음 보는 남녀가 수많은 인파 속에서 순식간에 짝을 짓는다니. 각박한 얘기만 자꾸 들리는 요즘, 걱정이 들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직접 느껴본 솔로대첩은 그렇지 않았다. 물론 기자 시선으로만 본 일부일 뿐이지만 여의도공원 분위기는 밝았다고 표현하고 싶다. 그저 참가자가 많았던 탓에, 솔로대첩을 완벽하게 즐기기가 어려웠을 뿐. 우려한 걱정거리는 나타나지 않았다. 과연 커플이 얼마나 탄생했을지 궁금함은 남지만 말이다.
추위 탓에 돌아오는 길 택시를 타자 운전기사님이 물어왔다. “솔로대첩 다녀왔어요?” 어떻게 알았느냐고 되묻자 “유명하잖아 다들 알지”하며 “지금 가는 거 보니 잘 안됐나봐요” 하며 웃는다. ‘여자가 적어서…’라 답하기도 궁색해 보여 가만히 있자 그는 즐겁게 말을 이었다.
“요즘 그, 인터넷 덕분에 세상이 참 재밌어진 것 같아요”
베타뉴스 최낙균 (nakkoon@betanew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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