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칼럼

[칼럼] 셧다운제란 '독배'를 받아 마실 것인가?


  • 이덕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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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 2011-11-22 15:44:36

    ‘악법도 법이다’.

     

    소크라테스의 말이다. 그도 그랬을 것이다. 말이 안 되는 '법'이라도 ‘법’이니까 따라야 한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철학자가 말년에 그런 말을 남기고 시대의 좌절 속에서 죽어간 걸 보면 예나 지금이나 비슷한 것 같다. 그가 죽은 지 수 천 년이 지난 지금, 우리도 같은 딜레마에 처해 있다.

     

    기어이 ‘온라인게임 셧다운제’가 시행됐다. 여성가족부가 ‘셧다운제’란 무기를 들고 국내 게임 산업을 농단 하더니, 결국 점령군 행세를 하고 있다. 명분도 실리도 없는 이 법은 청소년을 보호한다는 목적으로 밤 12시가 되면 어김없이 게임을 튕겨낸다.

     

    지난 20일, 셧다운제 시행 후 여가부 홈페이지는 비난의 목소리로 들끓었다. ‘온라인 통행금지법’, ‘신데렐라법’ 등 셧다운제의 폐해에 관한 수많은 의견들이 올라왔다. 여가부를 비꼬는 패러디물들이 인터넷에 봇물처럼 터져 나왔다. 하나 같이 “셧다운제는 게임중독을 근본적으로 차단할 수 없다”는 의견들이다.

     

    그런데도 여가부는 초연하다. 그들에게 향한 모든 비난을 ‘게임에 빠진 어린아이들의 징얼거림’ 정도로 여기는 모양이다. 한국 IT산업에 얼마나 해괴한 족적을 남겼는지 모르고 초지일관 밀어붙이는 걸 보면, 있으나 마나한 문화부보단 차라리 존재감이라도 있어 보인다. 적어도 “게임이란 '마약'으로 부터 우리 가족을 보호하자”라는 철지난 명분이라도 있지 않는가.

     

    다행히 해당 게임이 받는 피해는 적은 것으로 보인다. 시행 첫날 우려했던 혼란은 없었다. 동접자가 크게 줄지도 않았고, 반발도 많지 않았다. 하지만 피해가 덜하다고 가슴 쓸어내릴 일이 아니다. 게임업체에서 4천 억 원을 게임중독방지 기금으로 거둬들이겠다는 주장도 나오고, 셧다운제 적용연령을 현 16세에서 18세 이상으로 올리자는 소리도 있다. 처음엔 곤장 맞고, 유배 가고, 결국엔 사약 받는 게 죄인의 운명이다. 어차피 그들에겐 게임은 철저히 근절해야 할 ‘악’일 뿐이다.

     

    그렇다면 ‘악법도 법’이라며 독배를 받아 마셔야 하는가? 어림없다. 먼저 게임산업협회가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한다. 청소년·학부모로 이뤄진 문화연대는 셧다운제 위헌소송을 제기했다. 그런가하면 진보신당 청소년위원회에선 여가부 앞에서 셧다운제 반대 깜짝 집회를 열었다. 셧다운제의 부당함을 알리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그런데 정작 게임업체 당사자인 협회는 너무 소극적이다. 출범 초기 강력하게 대응하겠다는 협회장의 각오와는 달리 이달 초 셧다운제를 골자로 한 위헌소송을 헌법재판소에 소리소문 없이 청구했다. 국내 게임사 10여 개 업체가 공동으로 이름을 올렸다고 한다.  

     

    업계에서도 협회가 위헌소송을 제출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술에 술 탄 듯, 물에 물탄 듯 어정쩡하게 넘어가려는 모양새다. 알려져서 좋을 게 없다는 이유다. 물론 업체 입장에선 '기업 이기주의'라고 비난 받을까 두렵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당사자인 업체들이 시민단체 뒤에 숨어 몸이나 사려서야 되겠는가. 
     
    흐지부지 넘어가선 안 된다. 이건 명분싸움이다. 기업 이기주의란 비난에 앞서, 한국 게임이 죽고 사는 문제다. 세계 어느 나라도 셧다운제가 성공한 사례는 없다. 중국, 태국 같은 나라도 셧다운제를 시행했다가 다시 폐지했다. 외국에서도 한국 셧다운제에 대해 조롱섞힌 시선을 보내고 있다. 여론을 보더라도 이것은 청소년들의 인권을 침해하는 ‘악법’이고 잘못된 명분이다. 그 부당함을 강하게 주장해야 한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국내 게임산업도 옆을 돌아 볼 때가 됐다. 그동안 한국게임은 앞만 보고 달렸다. 성장 위주의 운영으로 얻은 것도 많지만, 잃는 것도 많았다. 사행성, 과몰입 등 게임에 대한 비뚤어진 인식을 바로 잡지 못했다. 소통대신 방관했고, 신뢰대신 불신을 쌓았다. 콘텐츠로 아이들의 환심을 산 만큼, 대화를 통해 부모들의 신뢰를 얻지 못했다. 오죽하면 부모들이 게임하는 자녀 문제를 여가부에 가서 의논할까.

     

    연탄 나르고, 김장해 주는 이벤트 정도로는 안 된다. 이제는 게임사들이 좀 더 진지하고 적극적으로 주변 문제를 풀어나가야 한다. 게이머와 그의 가족까지 생각하는 넓은 소통이 필요하다. 이렇게까지 '치욕'을 당했으면 배수진을 칠 때가 됐다. 한국게임은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

     

    지금 한국 게임은 ‘셧다운제’라는 독배를 들고 있다. 소크라테스처럼 ‘악법도 법’이라며 받아 마실 것인가. 아니면 그 법을 따르는 세상을 바꿀 것인가. 중요한 선택 위에 놓였다. 눈치나 보며 웅크리고 있다간 다음엔 ‘독배’ 대신 ‘교수대’ 앞에 설지도 모른다.


    한 네티즌이 온라인게임 셧다운제를 비꼬아 만든 패러디물. 인터넷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베타뉴스 이덕규 (press@betanew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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