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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씨게이트의 ‘하이브리드 실험’, 실패로 끝나나


  • 최용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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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 2011-09-22 11:36:51

    HDD와 SSD 사이의 공백을 메울 것으로 기대됐던 씨게이트의 하이브리드 드라이브(모델명:모멘터스 XT)가 출시된지 약 1년 하고도 2개월 정도가 지났다.

     

    성능은 뛰어나지만 용량 대비 가격이 비싼 SSD(솔리드 스테이트 드라이브)와 가격 대비 넉넉한 용량이라는 HDD(하드디스크 드라이브)의 장점을 모두 갖출 것으로 첫 등장시부터 기대를 모았던 씨게이트의 하이브리드 드라이브.

     

    HDD에서 SSD로 넘어가는 과도기를 충분히 메워줌은 물론, 2015년 경에는 전체 PC 저장장치의 약 25%를 하이브리드 드라이브가 차지할 것이라는 씨게이트의 장담은 과연 실현될 수 있을까.

     

    1년이 조금 넘은 현재(2011년 9월) 돌아본 하이브리드 드라이브에 대한 전망은 좋게 보아도 ‘글쎄요’라는 답변밖에 나오지 않는다. 제품 컨셉만 보면 저장장치 시장에 상당한 변화가 일어날 법도 했지만 체감상으로 느껴지는 시장의 반응 자체는 여전히 미지근한 수준이기 때문이다.

     

    ▲ 씨게이트의 하이브리드 드라이브 '모멘터스 XT'

     

    씨게이트의 하이브리드 드라이브, ‘모멘터스 XT’는 기존의 하드디스크에 기존의 버퍼 메모리보다 훨씬 많은 4GB(기가바이트) 용량의 플래시 메모리를 얹고, 자주 사용하는 소프트웨어를 학습해 빠른 속도를 갖춘 플래시 메모리에 미리 읽어놓음으로써 전체적인 퍼포먼스를 향상시킨다는 개념을 가지고 있다. SSD만큼은 아니어도 기존 HDD의 성능이 답답하게 느껴지던 사용자라면 분명 솔깃한 얘기임에는 틀림없다.

     

    실제로 이 제품 장착 후 부팅 속도가 빨라졌다느니, 인터넷 창 열리는 속도가 개선됐다느니 등의 사용자 체험기를 적잖게 볼 수 있다. 하지만 그 뿐이다. 그 이상의 작업, 예를 들어 저장장치의 성능이 요구되는 전문가급 사진이나 영상 편집이라던가, 화려한 그래픽의 최신 온라인 게임의 로딩 속도 등에서 눈에 띄게 성능이 좋아졌다는 말은 찾기가 쉽지 않다.

     

    상당수 모멘터스 XT 사용자들의 사용 평에서도 부팅속도와 웹 검색 속도 외에 평상시 체감 성능은 동급 일반 HDD와 큰 차이를 느끼지 못한다고 언급하고 있다. ‘SSD에 버금가는 속도와 HDD의 대용량’을 모두 바랐던 소비자들을 만족시키기에는 2% 이상의 부족함이 엿보인다. 대용량 캐시라고 볼 수 있는 내장 SSD 용량이 너무 작고, 더 늘릴 수도 없기 때문이다.

     

    사실 ‘하이브리드 드라이브’의 컨셉 자체는 인텔이 과거에 선보였던 ‘터보 메모리’ 기술을 조금 다른 형태로 구현한 것이다. 인텔의 메인보드서만 사용 가능했던 기능을 하드 자체서 구현했다는 것이 차이점. 물론 그 터보메모리 기술도 지금에 와서는 큰 메리트가 없는 상황이다.

     

    ◇ 완전히 해결 못한 안정성과 비용 문제, 발목을 잡다 = 문제는 또 있다. 반도체 메모리 제품과 자성(磁性)체 드라이브, 완전 디지털 제품과 반(半) 아날로그 제품의 결합이라 볼 수 있는 하이브리드 드라이브는 그 안정성을 아직 확실히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출시 초기부터 끊임없이 일부 시스템에서의 성능 저하, 맥(Mac) 시스템과의 호환성 문제 등 잡음이 끊이지 않더니, 올해 2월 경에는 아예 드라이브가 종종 멈추는 ‘프리징 현상’으로 곤욕을 치뤘다. 펌웨어 패치 등으로 어느 정도는 해결됐다고는 하지만, 일부 사용자들에게서 여전히 문제가 보고되고 있는 실정이다. 심지어는 같은 컨셉의 기술인 ‘터보메모리’ 기술과 충돌까지 일으키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물론 초창기 SSD 역시 온갖 잡다한 문제로 시장에 쉽게 발을 붙이지 못했고, 시간이 흐르면서 어느정도 안정성을 확보하게 되면서 시장을 형성하게 됐음을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시장의 상황이 하이브리드 드라이브가 안정화될 때 까지 기다려 줄 것인지가 문제다.

     

    처음부터 차세대 드라이브로 자리매김한 SSD는 충분한 비전이 있었기에 꾸준히 기술개발이 이어졌고, 그 결과 현재에 이르러서는 상당한 시장을 구축하게 됐다. 무엇보다 ‘안정성’이 중요시되는 기업 시장에서도 SSD 도입 사례가 꾸준히 늘고 있는 추세다.

     

    ▲ 어느정도 안정화된 SSD는 지속적인 가격 인하와 더불어 시장에 자리를 잡는데 성공했다

     

    씨게이트가 정말로 하이브리드 드라이브를 통해 뭔가 해내려면 SSD 못지 않은 끊임없는 연구 개발과 발전이 있어야 했다. 하지만 모멘터스 XT는 처음 제품이 출시된 이후 더 큰 용량의 제품이나 성능이 개선된 후속 제품에 대한 소식이 거의 전무하다. 요컨데, 씨게이트의 하이브리드 드라이브에 대한 관심이 초창기만큼 못한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SSD보다는 싸다지만 여전히 HDD에 비싼 가격도 걸림돌이다. 많이 싸졌다고는 하지만 씨게이트의 하이브리드 드라이브는 같은 용량의 일반 HDD보다 약 2배 정도 비싸다. 여전히 소비자들의 지갑을 쉽게 열 수 있는 수준이 아니고, 그만큼 실질적인 부담을 줄이지도 못하고 있다.

     

    ▲ 가격비교 사이트의 동급 일반 HDD와의 가격 비교(출처:다나와)

     

    그 와중에도 일반 HDD와 SSD의 가격은 크게 좁혀져 하이브리드 드라이브는 운신의 폭이 더욱 좁아졌다. 이미 운영체제와 자주 쓰는 주요 애플리케이션을 모두 설치하기에 충분한 120GB 언저리 용량의 제품이 20만원 초중반대까지 내려왔다. 어중간한 성능 향상보다 확실한 성능 향상을 노리는 소비자 입장에서 하이브리드 드라이브의 메리트는 떨어진다. 이왕 비용을 투자할 바에야 그냥 SSD와 일반 HDD를 조합해서 쓰는 것이 실질적으로 더 낫다.

     

    마지막으로, 관련 업계의 반응도 시원찮다. 현재 하이브리드 드라이브를 제조 및 생산하는 업체는 씨게이트가 유일하다.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삼성의 하드드라이브 사업부는 이미 씨게이트의 손에 넘어갔기 때문이다. 하지만 경쟁사들은 더욱 안정적이고 대용량을 제공하는 HDD나 SSD, 클라우드 기반의 저장장치 시장에 더 관심이 있어 보인다.

     

    결국 씨게이트가 1년여간에 걸쳐 진행한 ‘하이브리드 드라이브 실험’은 사면초가나 다름 없는 상황에 처한 셈이다. 씨게이트 입장에선 뭔가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 아닐까.


    베타뉴스 최용석 (rpch@betanew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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