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1-07-25 09:19:20
2008년을 마감하던 겨울, 당시 다니던 회사 바로 앞 서점에 작은 안내문이 붙었다. “28년 동안 상지서적을 사랑해주신 고객여러분들께 죄송스러움과 함께 감사를 드립니다. 행복하세요”.
당시 이 서점의 폐업 소식은 당시 일부 신문의 사회면에도 소개되었지만 기사의 내용은 한결 같았다. 누구나 짐작하듯 대형 오프라인 서점과 인터넷 서점의 할인 공세를 이기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어느 기사에서는 동네서점이 갖는 기능, 즉 단순한 책의 거래처가 아닌 문화공간의 상실에 대해 마음 아파했고, 어느 신문에서는 인터넷 서점의 역기능을 생각하는 기사를 쓰기도 했다. 어느덧 3년이 지난 이야기다.
비슷한 뉴스가 얼마 전 들려왔다. 이번에는 미국이고 덩치가 좀 크다는 것이 다른 점이다. 우리나라에도 들어와 있는 반즈 앤 노블과 함께 대표적인 대형 체인서점인 보더스라는 회사가 끝내 문을 닫았다는 소식이었다. 약 40년 전 미시간주 앤 아버에서 처음 문을 연 보더스는 1만1천여 명의 직원과 400여개의 체인점을 가진 말 그대로 체인 서점의 교과서였다. 전성기에는 서점이 1,200여 개에 이를 정도였고, 국내에도 이 서점을 벤치마크한 회사가 여럿이다.
하지만 보더스 역시 90년대 들어서 대형 서점의 장점을 읽고 고민을 했다. 책 대신에 CD와 DVD 판매에 열을 올렸고, 시설을 확장하고 소매 서점을 혁신했다. 그런데 결정적으로 온라인 판매는 당시로서는 경쟁자라고는 생각지도 않았던 신생업체 아마존을 통해 위탁판매를 했다. 지금으로서는 이해되지 않는 결정이었지만, 당시에는 그럴 수도 있고, 이른바 효율과 집중에 따른 결정이었다. 언젠가부터 보더스는 책을 찾으러 가는 곳이고, 아마존은 책을 사는 곳이 되었다.
반대로 반즈 앤 노블은 온라인을 강화했다. 우리 시장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자체적으로 전자책 누크(Nook)를 개발하면서 인터넷 시대를 적극 맞섰다. 특별한 일이 아니면 당일 배송이나 적어도 주문하고 다음날 정도면 받아볼 수 있는 우리 시장과는 달리, 워낙 땅 덩어리가 커서 배송에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드는 미국에서 전자책이 발달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어쨌건 반즈 앤 노블은 인터넷에 순응하면서도 적극 맞섰다. 이런 반즈 앤 노블 역시 경영이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수익성이 떨어지면서 지난 2월에 이른바 인수합병 시장에 매물로 나와 협상이 진행 중이니 말이다.
서점을 가보면 여전히 소비자들은 종이책을 읽는다. 그리고 종이책을 산다. 그것이 전통적인 서점이던 온라인 서점이던 간에 말이다. 물론 그와 함께 태블릿, 컴퓨터, 그리고 전자책 등 예전에는 생각하기 어려웠던 다양한 방법으로 책을 읽는다. 가끔은 그것이 책이라는 전통적인 그릇에는 어울리지 않는 것이라고 해도 말이다.
물론 새로운 방법이라고 해서 항상 옳은 것은 아니다. 전자책이 새로운 기술이지만 중요한 것은 그 속에 담긴 컨텐츠이지 결코 전자책이라는 겉모습이 중요한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생각해보면 종이 역시 발명될 당시로서는 최신 기술이었다. 주윤발이 주연으로 나왔던 공자 - 춘추전국시대라는 영화를 보면 공자와 제자들은 엄청난 분량의 대나무로 만든 책을 가지고 다닌다. 심지어 얼어붙은 강 위에서 무게를 이기지 못한 얼음이 깨지면서 그 대나무 책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바치는 제자가 있을 정도다. 그가 무식해서, 아니면 대나무가 아까워서 그랬겠는가? 그 안에 담긴, 당시로서는 복사도 불가능한 지식의 사라짐이 아쉬워서 그랬을 것이다.
우리 시장에서 전자책이 워낙 인기가 없다보니, 토종 선수들마저 외국에서 먼저 책을 선보이고 있는 지경인데, 온라인 서점 1위인 아마존은 이미 선보였던 전자책인 킨들을 업그레이드해서 타블렛PC시장까지 넘보고 있다. 이미 잘 알려진 이야기지만 아마존은 요즈음 책을 파는 것보다는 클라우드 서비스에 열을 올리고 있다. 책에서 시작해서 데이터 센터와 클라우드 서비스까지 진행되었는데 정보를 제공한다는 점에서는 일맥상통하는 점이 있다.
앞서 주윤발이 연기하던 공자의 마지막 모습에 수많은 대나무책을 질서 정연하게 쌓아둔 모습을 보면서 서버가 가득한 아마존의 IDC나 서버 팜을 떠올렸다면 공자에게 너무 불경스러운 일일까?
베타뉴스 김영로 (bear@betanew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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