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사설

3등이 살아남지 못하는 IT 기업의 현실


  • 김영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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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 2011-05-02 09:46:09

    씨게이트의 삼성 하드디스크 사업부분 인수는 IT뉴스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경제면에서 더 많이 찾아 볼 수 있었던 뉴스였다. 물론 기업의 인수 합병이라는 성격 때문이기도 했겠지만, 아무래도 우리 시장에서는 삼성이라는 대기업이 특정 사업부이기는 해도 매각한다는 낮선 뉴스에 익숙지 않은 탓일 것이다. 특히 우리 시각으로 보면 그렇다.

     

    물론 속내를 들여다보면 삼성전자는 씨게이트와 하드디스크 관련 자산을 양도하고, 반대로  씨게이트 지분의 9.6%를 인수해서 2대 주주가 되는 등의 내용을 담고 있어, 일부에서는 사실상 삼성이 씨게이트를 인수한 것이 아닌가하는 의문을 표시하기도 한다. 어쨌든 삼성은 그 동안 비주력 사업이었던 하드디스크를 매각 내지는 줄이고, 반대로 장점인 반도체를 기반으로 하는 SSD(Solid State Disk)로 시장을 바꾸기 위해 전력을 다할 것으로 보인다.

     

     

    이는  SSD의 특징, 예를 들면 반도체를 이용한 덕분에 빠른 반응속도와 모터가 필요 없어 발열, 소음, 진동 등의 물리적 성능에서 우수하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잘 알려진 장점 때문이다. 여기에 기존 HDD에 비교해서 읽기와 쓰기 속도는 각각 4배, 6배 정도 빠르지만 소비전력은 절반 이하, 무게도 25% 정도다. HDD사업을 포기한 삼성은 물론, 씨게이트와 WD 등 기존의 HDD 강자 역시 이런 까닭에 SSD 업체를 인수하는 등의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3등을 기억하지 못하는 지금의 IT 산업

     

     

    하지만 냉정하게 말하면 분명 삼성은 하드디스크라는 사업에서 실패한 것이다. 1등 주의를 표방하는 그들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들겠지만 더 이상 IT업계에서는 3등 이하의 업체는 살아남기 힘든 시장이 되어 가고 있다. 참고로 인수합병 바로 직전의 삼성의 하드디스크 시장 점유율은 전세계 기준으로 약 10% 수준이었다. 국내시장과는 달리 1, 2등의 벽이 워낙 견고하고 높았기 때문이다.

     

    이와 비슷한 대표적인 시장이 바로 CPU와 GPU이다. 인텔이라는 절대 강자에 AMD가 대응하는 CPU시장에서 3등이 누구인지는 아무도 기억하지 못한다. VIA가 들으면 섭섭하겠지만, 5대양 6대주에서 남극 대륙이 포함된다는 것만큼이나 기억 못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특히 CPU 시장은 인텔과 AMD의 경쟁이 아닌, 스마트폰이나 타블렛에 주로 쓰이는 모바일용 프로세서에 시장이 위협을 받고 있다. 마치 하드디스크 시장이 SSD 때문에 위기에 처한 것과 비교하면 단지 우연의 일치로 생각하기에는 시사 하는 바가 크다. 엔비디아와 ATi가 군웅할거하고 있는 그래픽카드 시장 역시 비슷한 처지다. 점점 강력해지는 온보드와 아예 CPU와 GPU를 하나로 묶은 제품들이 선보이면서 시장이 변화하고 있다.

     

    이는 IT산업, 특히 부품 산업이 전형적인 규모의 경제로 가고 있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제조사만의 고유의 기술과 아이디어가 번뜩이는 제품들이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여지가 있었다. 특히나 그래픽카드 같은 것들은 칩셋 제조사와 최종 제품을 만드는 여러 회사에서 다양한 제품이 나오면서 선택의 폭을 넓혔다. 하지만 대량 생산과 대량 소비라는 21세기형 경제 미덕 앞에 독특한 기술력과 아이디어를 앞세운 이른바 작지만 강한 회사들은 그 명맥을 이어가기도 힘든 실정이 되었다.

     

    늘어나는 독과점의 우려

     

    이런 공식을 그대로 다른 부품에 대입해본다면, 더 암울해진다. 예를 들어 수많은 제조사가 제품을 판매하는 모니터의 경우 패널이 차지하는 절대적인 비중을 생각하면 앞으로 어느 정도 규모의 경제가 되지 않는 회사들의 앞날은 결코 밝다고 하기 힘들다. 심지어 개성 있는 색감을 자랑하는 프린터나 디지털 카메라와 같은 이미지 장치 역시 마찬가지다. 최근의 합종연횡은 아무리 규모가 큰 회사들이라고 하더라도 한 두 번의 신제품을 잘못 만들거나, 조금이라도 그 흐름에서 벗어난다면 결코 안전하지 않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다양한 제품들이 소비자들의 사랑을 받는 시대가 되기에는 21세기의 IT 제품들은 규모의 경제라는 너무도 강력한 장벽을 넘지 않으면 소비자들의 선택마저 받기 힘든 시대가 된 느낌이다. 아무쪼록 이로 인한 독점의 피해가 없기를 바랄 뿐이다. 


    베타뉴스 김영로 (bear@betanew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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