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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수출’과 ‘고환율’에 신음하는 국내 IT시장


  • 김영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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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 2009-04-07 08:47:27

    지난해부터 시작된 경기 불황으로 대부분의 소비자들은 예년과는 달리, 지갑을 열기가 좀처럼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이는 식료품을 포함한 유통업계 전반에 걸쳐 나타나고 있는 현상이다.

     

    특히, 환율 상승으로 인해 제품 가격이 전년 대비 최대 20% 이상 급상승한 IT업계의 어려움은 날로 더해지고 있다. 그 중에서도 지속적인 가격 상승세를 타고 있는 제품은 다름 아닌 ‘메이드 인 재팬(Japan)’, 즉 일본 IT 기기다.

     

    특히, 지난해 상반기까지 800원대를 유지하고 있던 엔화는 최근 들어 1,600원까지 오르는 등 상승세를 반복하고 있으며, 달러와의 격차 또한 날이 갈수록 차이를 좁히고 있는 추세다.

     

    ◇ 엔고 현상에 몰려드는 관광객, 방문 목적은 IT 쇼핑(?) = 엔고 현상이 지속되면서 최근 한국을 찾는 일본인 관광객의 수가 부쩍 늘어나고 있다.

     

    한국을 찾는 일본 관광객의 일부는 DSLR, 초소형 디지털카메라, 캠코더 등을 현지 보다 저렴한 가격에 구입하려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렇듯 카메라 전문 매장이 밀집돼 있는 용산 전자상가와 남대문 수입상가 등지에서 일본에서 정식 수입된 제품을 구매하는 기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소니와 도시바, 후지쯔 등의 일본산 노트북 판매량이 지난해에 비해 크게 급증하고 있다. 이는 다른 나라에 비해 원화 가치가 떨어지면서 관광이 아닌 쇼핑을 목적으로 한국을 찾는 외국인이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관련업계에 따르면 용산 전자상가를 찾는 해외 관광객은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150% 이상 증가했다. 이로 인해 디지털 카메라와 MP3플레이어, 노트북 등 IT제품 매출이 30%가량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이 구매하는 수입 제품의 일부는 ‘월드 와이드 워런티(World Wide Warranty)’가 적용됨으로써, 해외에서도 해당 제품에 대한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업계 관계자들은 “해외 관광객들이 국내 IT 제품을 구매하는 결정적인 이유는 일본의 유명 할인점에 비해 한국이 10% 이상 저렴하기 때문”이라며, “엔고(엔화 가치 상승) 현상이 계속될수록 해외 관광객은 더욱 늘어날 전망”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일본과 국내의 IT 전문 쇼핑몰을 살펴보면 제품에 대한 가격 차이가 확실하게 드러난다. 대표적으로 소니의 DSLR ‘알파 350’의 일본 가격은 8만 3,790엔(한화 약 113만원)에 판매되고 있는 반면, 국내는 이보다 20% 가량 저렴한 80만원 후반대에 구매할 수 있다.

     

    여기에, 소니 플레이스테이션 3, PSP 등의 콘솔 게임기와 애플 아이팟 터치 MP3 플레이어또한 환율 상승으로 인해 대대적인 가격 인상을 실시했지만, 해외 판매가격에 비해 훨씬 저렴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렇다 보니 일부 관광업체는 일본인을 포함한 해외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명동과 남산에 이어, 남대문과 용산 전자상가를 추천 일정에 포함시킬 정도다.

     

     

    ◇ 국내 디지털카메라 시장, 역수출과 가격 급등에 ‘울상’ = 계속되는 엔고 현상과 환율 불안정으로 국내에 정식 수입된 제품을 해외 시장에 되파는 이른바 ‘사재기’도 눈에 띄게 늘고 있다.

     

    국내 유통업계에 따르면, 한국에 배정된 디지털카메라 7,000여대가 환율 여파로 국내 시장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게 되자, 일본으로 역수출해 상당한 차익을 남긴 것으로 드러났다.

     

    최근 역수출되는 사례가 늘자, 국내 시장에 자리잡고 있는 일본 업체들의 고민은 더욱 깊어지고 있다. 이는 엔화강세의 영향으로 물류비용을 제외해도 상당한 이윤이 남기 때문이라는 것이 업계측 설명이다.

     

    여기에, 일부 외산 디지털카메라 업체들은 한국시장 판매 물량을 기존 보다 40% 이상 줄이는 현상까지 빚어지고 있다. 환율 상승으로 국내 시장의 수익성 격화와 함께 역수출로 일본 내수시장의 가격통제마저 어려워졌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이러한 역수출과 고환율로 인해 대부분의 일본 IT 업계들은 가격인상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는 분위기다. 디지털카메라 전문 업체로 잘 알려진 일본의 니콘과 캐논, 소니코리아 등은 지난 1일부터 이미 가격을 인상한 상태다.

     

    그 중에서도 캐논은 일부 DSLR(렌즈교환식) 카메라와 초소형 카메라의 가격을 15% 가량 인상했으며, 니콘 또한 이달들어 D700, D90 등 고급형 DSLR 카메라의 가격을 10% 인상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소니코리아는 지난 1월경 일부 품목에 15% 이상의 가격을 인상했음에도 불구하고, 최근 알파 시리즈 일부 제품군의 가격을 다시 한번 인상하면서 소비자들의 따가운 눈총을 받고 있다.

     

    일본 IT 제품 수입업체 관계자는 “일부 해외 관광객들이 환차익을 노리고 국내에서 대량으로 구매한 뒤, 해외에 되파는 일이 많아지고 있다”라며, “가격 인상과 더불어 공급물량을 줄이는 것은 역수출을 최대한 방지하기 위함이다”라고 말했다.

     

    이러한 현상이 지속되면서 일부 소비자들은 일본에서 정식 수입된 IT 제품을 해외에 되파는 일이 없도록 강력한 대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한 소비자는 “해외 관광객이 구매하는 일본 제품은 국내 업체가 만든 제품이 아니라 수입 제품이기 때문에, 수익성도 떨어질 뿐 아니라 전체적인 IT 시장의 유통흐름도 차단될 수 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도 “한국을 찾는 해외 관광객이 지난해에 비해 크게 늘어난 것은 어느 정도 받아들일 수 있으나, 국내 업체가 만든 제품이 일본 제품 보다 적게 팔려나간다는 것은 국가 경쟁력을 더욱 떨어뜨리는 요인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 일부 외국인 및 유통업자들이 대규모로 제품을 역수출하게 되면 기존 가격체계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을 국내 유통업계는 반드시 숙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같은 제품임에도 불구하고 일본(좌)와 국내(우) 가격과의 차이가 크다


    베타뉴스 김영훈 (raptor@betanew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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