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이것이 말로만 듣던 '블랙홀'...인류 역사상 첫 관측 성공, 韓연구자 8명도 참여


  • 조창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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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 2019-04-10 23:06:15

    ▲사상 최초로 10일(한국시간) 오후 공개된 블랙홀의 실제 모습. 한국을 비롯한 주요국 연구진으로 이뤄진 EHT프로젝트를 통해 관측된 처녀자리 블랙홀 M87이다 © EHT

    지구로부터 5천500만 광년 거리…질량 태양의 65억배 달해
    세계 각지 전파망원경 연결한 '사건지평선망원경 프로젝트' 성과
    "일반상대성이론에 대한 궁극적 증명…천문학 역사상 매우 중요한 발견"

    세계 최초로 초대질량 블랙홀 모습이 공개됐다.

    국내 천문학자를 포함한 사건지평선망원경(EHT·Event Horizon Telescope) 연구진은 거대은하 'M87' 중심부에 있는 블랙홀 관측에 성공했다고 10일 밝혔다.

    EHT는 블랙홀 영상을 포착하기 위해 국제협력을 통해 구축한 지구 크기의 거대한 가상 망원경이다.

    세계 각지의 전파망원경을 연결하는 방식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관측 결과는 이날 미국 천체물리학 저널 레터스(The Astrophysical Journal Letters) 특별판에 6편의 논문으로 발표됐다.

    관련 영상은 처녀자리 은하단 중심부에 존재하는 'M87' 중앙 블랙홀을 보여준다.

    학술적으로 블랙홀은 빛조차 탈출할 수 없는 강한 중력을 가지고 있다.

    이름처럼 흔히 검은 구멍을 상상하지만, 빛까지 흡수하기 때문에 직접 볼 수는 없었다.

    그간의 블랙홀 이미지는 이론을 바탕으로 한 예측 모델이다.

    사건지평선은 블랙홀 안과 밖을 연결하는 지대를 뜻한다.

    블랙홀은 사건지평선 바깥을 지나가는 빛도 휘어지게 만든다. 할리우드 영화 '인터스텔라'에 비슷한 이미지가 표현됐다.

    블랙홀 뒤편에 있는 밝은 천체나 블랙홀 주변에서 내뿜는 빛은 왜곡돼 블랙홀 주위를 휘감는다.

    왜곡된 빛은 우리가 볼 수 없는 블랙홀을 비춰 윤곽이 드러나게 하는데, 이를 '블랙홀의 그림자'(Black Shadow)라고 부른다.

    연구진은 여러 번의 관측자료 보정과 영상화 작업을 통해 고리 형태 구조와 중심부 어두운 지역, 즉 블랙홀 그림자를 발견했다.

    M87 사건지평선은 약 400억㎞에 걸쳐 드리워진 블랙홀 그림자보다 2.5배가량 더 작다는 것을 밝혀냈다.

    EHT 과학이사회 위원장인 네덜란드 래드버드 대 하이노 팔크 교수는 "만약 블랙홀이 밝게 빛나는 가스로 이뤄진 원반 형태의 지역에 담겨 있다면, 그림자 같은 어두운 지역을 만들어 낼 것이라고 예측했다"며 "이 현상은 아인슈타인 일반상대성이론에서 예상한 바지만, 우리가 이전에는 전혀 직접 보지 못한 것"이라고 말했다.

    관측에 성공한 블랙홀은 지구로부터 5천500만 광년 떨어져 있다.

    질량은 태양의 65억 배에 달한다. 태양 1개의 질량이 지구 33만2천여개 질량과 맞먹는 걸 고려하면 가늠하기조차 어려울 정도다.

    EHT 프로젝트 총괄 단장인 미국 하버드 스미스소니언 천체물리센터 셰퍼드 도엘레만 박사는 "우리는 인류에게 최초로 블랙홀 모습을 보여주게 됐다"며 "이 결과는 천문학 역사상 매우 중요한 발견이며, 200명이 넘는 과학자 협력으로 이뤄진 이례적인 성과"라고 강조했다.

    실제 관측은 2017년 4월 5∼14일 6개 대륙 8개 망원경 참여를 통해 진행했다.

    아타카마 밀리미터·서브밀리미터 전파간섭계(ALMA)와 아타카마 패스파인더(APEX), 유럽 국제전파천문학연구소(IRAM) 30m 망원경, 제임스 클러크 맥스웰 망원경(JCMT), 대형 밀리미터 망원경(LMT), 서브밀리미터 집합체(SMA), 서브 밀리미터 망원경(SMT), 남극 망원경(SPT) 등이다.

    지구 자전을 이용해 영상을 합성하는 기술이 도입됐다.

    1.3㎜ 파장 대역에서 하나의 거대한 지구 규모 망원경이 구동되는 셈이다.

    EHT의 공간분해 성능은 프랑스 파리의 카페에서 미국 뉴욕의 신문 글씨를 읽을 수 있는 정도라고 한국천문연구원 측은 설명했다.

    EHT 연구진은 같은 시각에, 서로 다른 망원경을 통해 들어온 블랙홀 전파신호를 컴퓨터로 통합 분석한 뒤 이를 역추적했다.

    원본 데이터를 최종 영상으로 바꾸는 데 필요한 연구는 독일 막스 플랑크 전파천문학연구소와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헤이스택 관측소에 있는 슈퍼컴퓨터를 활용했다.

    우리나라에선 한국천문연구원·과학기술연합대학원대학교·서울대·연세대 등에서 8명이 프로젝트에 힘을 보탰다.

    한국우주전파관측망(KVN)과 동아시아우주전파관측망(EAVN)도 이번 연구에 이바지했다.

    한국천문연구원 손봉원 박사는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에 대한 궁극적인 증명"이라며 "그간 가정했던 블랙홀을 실제 관측해 연구하는 시대가 왔음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이번 연구 성과 관련 기자회견은 벨기에 브뤼셀, 덴마크 링비, 칠레 산티아고, 중국 상하이, 일본 도쿄, 대만 타이베이, 미국 워싱턴 DC 등지에서 동시에 이뤄졌다.


    베타뉴스 조창용 (creator20@betanew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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