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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수일가, 책임경영보다 지배력에 더 관심...공정위, 기업 지배구조 현황 공개


  • 조창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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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 2018-12-07 00:34:14

    ▲ 공정위, 공시대상 기업집단 지배구조 현황 공개 © 연합뉴스

    대기업집단 총수나 그 2·3세는 '책임 경영'보다는 지배력이나 잇속을 챙기는 데 더 관심이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이사등재 현황을 분석한 결과다.

    내부 감시 기능을 담당하는 사외이사나 위원회는 외형적으로는 잘 갖춰져 있었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거수기'나 '예스맨'이라는 오명을 벗기 어려웠다.

    그나마 '스튜어드십 코드'(기관투자자 의결권 행사지침) 도입에 따라 국내 기관투자자의 의결권 행사 적극성은 높아졌지만, 소수주주의 목소리는 여전히 미약했다.

    공정위는 6일 이러한 내용이 담긴 '2018년 공시대상 기업집단 지배구조 현황'을 공개했다.

    분석 대상은 올해 지정된 공시대상 기업집단(자산 5조원 이상) 60개 중 신규 지정된 3개와 특별법에 따라 설립된 농협을 제외한 56개 집단 소속 회사 1천884개다.

    이 가운데 총수가 있는 49개 집단 소속회사 1천774개 중 총수일가가 1명 이상 이사로 등재된 회사의 비율은 21.8%(386개사)였다. 총수 본인이 이사로 등재된 회사의 비율은 8.7%(155개사)에 불과했다.

    총수일가 이사등재 비율은 셀트리온(88.9%)·KCC(82.4%)·부영(79.2%)·SM(72.3%)·세아(66.7%) 순으로 높았고, 미래에셋(0.0%)·DB(0.0%)·한화(1.3%)·삼성(3.2%)·태광(4.2%) 순으로 낮았다.

    작년 발표와 겹치는 21개 집단을 기준으로 보면 총수일가가 이사로 등재된 회사의 비율은 1년 전보다 1.5%포인트 감소했다. 다만 총수 이사등재 비율은 0.3%포인트 증가했다.

    분석 기간을 확대하면 총수일가 이사등재 비율은 2015년 18.4%에서 지속적으로 하락해 올해 15%대로 떨어졌다.

    특히 총수 본인이 전혀 이사로 등재돼 있지 않은 집단은 14개(28.6%, 한화·현대중공업·신세계·두산·CJ·대림·미래에셋·효성·태광·이랜드·DB·동국제강·하이트진로·한솔)에 달했다. 이 중 8개는 2·3세도 이사로 등재되지 않았다.

    총수나 2·3세가 등기임원을 맡지 않으면 경영권을 행사하더라도 법적 책임을 묻기 어렵다. '책임 경영'과 멀어진다는 의미다.

    반면 총수일가는 기업집단의 지배력이나 이득 확보 차원에서 유리한 회사에는 적극적으로 이사로 이름을 올린 것으로 나타났다.

    총수일가가 이사로 등재된 회사 386개사를 분석해 보면 주력회사(46.7%), 지배구조 정점인 지주회사(86.4%), 사익편취 규제대상 회사(65.4%) 등에 집중돼 있었다. 전체 회사 대비 총수일가 이사등재 비율 21.8%를 크게 앞지른 수치다.

    특히 총수 2·3세가 이사로 등재된 회사(97개) 중 75.3%는 사익편취 규제 대상(52개) 및 사익편취 규제대상을 아슬아슬하게 피해가는 '사각지대' 회사(21개사)였다.

    공익법인 152개를 보면 계열사 주식을 보유하고 있는 공익법인(59개)의 총수일가 이사등재 비율은 78.0%였다. 반면 주식을 보유하지 않은 공익법인(93개)의 등재 비율은 39.8%에 불과했다. 역시 지배력과 관련된 부분이다.

    신봉삼 공정위 기업집단국장은 "총수 본인이 전혀 이사로 등재되지 않은 집단이 14개에 이르고 총수 2·3세가 사익편취 규제대상 및 사각지대 회사에 집중적으로 이사로 등재한 점은 주목해야 할 부분"이라며 "이사 등재가 안 됐음에도 경영 보고를 받고 지시를 하는 등 권한과 책임이 일치하지 않아 투명성과 책임성이 확보되지 못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사회 작동 현황을 보면 내부 감시 기능을 높이려는 장치들이 도입됐지만, 실효성은 미흡한 것으로 공정위는 판단했다.

    56개 집단 소속 253개 상장회사의 사외이사는 787명으로 전체 이사의 50.1%를 차지했다. 사외이사의 이사회 참석률은 95.3%였다.

    하지만 최근 1년간(작년 5년∼올해 4월) 이사회 안건 5천984건 중 사외이사의 반대 등으로 원안대로 통과되지 않은 안건은 고작 0.43%인 26건에 불과했다. 99.57%가 원안대로 통과됐다는 말이다.

    특히 대규모 내부거래 관련 안건 810건 중 부결된 안건은 단 한 건도 없었다. 단 2건이 수정 또는 조건부 가결됐을 뿐이다.

    사외이사가 사실상 '거수기' 역할만 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이들 상장사는 법상 최소 기준을 충족하는 이사회 내 위원회를 설치하고 있었다. 상법 등에 따르면 자산총액 2조원 이상 상장회사는 사외이사후보추천위원회·감사위원회를 반드시 설치해야 한다.

    내부거래위원회는 법률상 의무가 없지만, 설치 비율이 2014년 23.1%에서 올해 35.6%까지 증가했다.

    기업 스스로 내부 통제장치를 활발히 도입하고 있다고 볼 수 있지만, 역시 형식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근 1년간 상장사 위원회에 상정된 안건 1천501건 중 원안대로 통과되지 않은 안건은 8건(보류 1건, 수정의결 6건, 부결 1건)에 불과했다. 내부거래위원회 안건은 100% 원안 가결됐다.

    공정위가 이사회나 위원회 안건 중 대규모 내부거래 안건 295건을 분석한 결과, 수의계약으로 체결한 안건 279건 중 그 사유를 기재하지 않은 안건이 81.7%나 됐다.

    공정위는 지난 1월 '맥주캔 통행세'로 총수 2세에게 100억원대 일감을 몰아준 혐의로 과징금 79억5천만원을 부과한 하이트진로의 이사회회의록에 관련 논의가 전혀 없다는 점을 예로 들며 충실한 심의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으로 기관투자자의 적극적인 의결권 행사는 눈에 띄게 증가했다. 그러나 소수주주권이 제대로 작동됐다고 보기는 어려웠다.

    최근 1년간 국내 기관투자자들은 대기업집단 소속 211개 상장사의 주주총회(안건 총 1천362건)에 참가했다.

    국내 기관투자자의 의결권 있는 주식 대비 행사한 의결권 비율은 73.8%였다. 찬성은 89.7%, 반대 10.3%였다.

    전년에 이어 연속으로 지정된 26개 집단을 비교하면 의결권 행사비율은 작년 71.5%에서 올해 77.9%로, 반대 비율은 5.8%에서 9.5%로 큰 폭으로 증가했다.

    해외와 국내 기관투자자의 반대 비율 차이도 작년 5.1%포인트에서 올해 0.4%포인트로 크게 좁혀졌다.

    반면 소수주주를 위한 제도가 있더라도 실제로 행사되는 경우는 드물었다.

    집중투표제(2명 이상 이사 선임 때 주주에게 선임할 이사 수 만큼 의결권을 주는 제도)는 253개 상장사 중 4.4%인 11개사가 도입했지만, 실제 행사된 경우는 전년과 마찬가지로 단 한 건도 없었다.

    서면투표제는 8.3%인 21개사가 도입했는데, 이 방식으로 의결권을 행사한 곳은 5.1%(13개사)에 불과했다.

    전자투표제는 25.7%에 달하는 65개사가 도입했는데, 이 방식으로 의결권이 행사된 경우는 22.1%(56개사)에서만 찾아볼 수 있었다.

    이들 세 가지 제도의 도입률을 전체 상장사(1천984개)와 비교하면 대기업집단 소속 상장회사가 오히려 낮았다.

    이익 보호를 위해 소수주주에게 인정된 '소수주주권' 행사는 최근 1년간 14차례 행사됐다. 회계장부 열람권 3건, 주주제안권 8건, 실질주주명부 열람청구권 1건, 주주총회 소집청구 2건이었다.

    공정위는 앞으로 공시점검 결과와 채무보증 현황 등 대기업집단의 현황을 지속적으로 분석·공개해 시장 감시기능을 활성화하고 자율적인 지배구조 개선을 유도할 계획이다.

    신봉삼 국장은 "대기업집단이 바람직한 방향으로 가고는 있지만 개별기업 가치를 높이기 위한 스스로의 개선이라기보다는 정부 규제 대응 차원이기 때문에 실제 작동은 미흡한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베타뉴스 조창용 (creator20@betanew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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