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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초의 노트북은?···노트북 시장 여전히 ‘청신호’


  • 이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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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 2018-07-11 10:29:12

    [베타뉴스=이진성 기자] 860그램(g). 세계에서 가장 가벼운 노트북(14형 기준)으로 월드 기네스북에 등재된 'LG 그램 14'의 무게다. 8.98밀리미터(mm). 세계에서 가장 얇은 노트북이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 '에이서 스위프트 7'의 두께이다. 물론 화면 크기와 노트북의 형태, 그리고 비교 기준에 따라 더 가볍고 얇은 노트북도 있다.

    10kg을 훌쩍 넘는 무게로 '휴대할 수 있는 컴퓨터'에서부터 시작한 노트북은 어느덧 1kg과 1cm 미만의 제품들이 선보여지며 더 얇고 가벼운 형태로 발전하고 있다. 더불어 최근에는 전력 효율성 중심으로 설계된 노트북 최적화 그래픽카드인 엔비디아 맥스큐(MAX-Q) 디자인을 비롯해, 외부에 GPU를 두고 필요시 이를 이용하는 eGPU(External GPU) 기술 등 성능과 휴대성이라는 노트북 시장의 트레이드 오프에 대한 난제를 해결하기 위해 등장하고 있는 신기술들로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 860g 무게의 LG 그램 14, 8.98mm 두께의 에이서 스위프트 7 (왼쪽부터)

    노트북이라는 호칭은 한때 '노트북의 강자/왕국'으로 군림했던 도시바에 의해서 탄생한 -브랜드명에 가까운- 명칭이다. 보통 PC는 책상(desk) 위에 올려놓고 사용하는 데스크톱(Desktop Computer)과 무릎(lap) 위에 두고 사용한다는 의미로 랩톱(Laptop Computer)으로 구분된다. 실제 영어권 국가에서도 랩톱으로 부르고 있는 등 노트북보다는 랩톱이 옳은 표현이라 할 수 있겠다. 편의상 본 기사에서는 노트북이라 칭하겠다.

    가벼운 무게와 함께 공책(note)만큼이나 작은 크기를 가지고 있는 노트북(Notebook Computer)은 휴대성에 특화된 소형 컴퓨터이다. 노트북의 역사는 이러한 '휴대성'에서 시작되었다. 사실 그 역사는 길지 않다. 1980년대 초반부터 알려지기 시작, 1980년대 후반에 들어서야 비로소 우리가 알고 있는 노트북의 의미로 대중화의 길을 걸었던 것. 그러나 휴대가 가능한 컴퓨터라는 그 시도 측면에서 바라본다면 데스크톱보다 앞선 꽤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 퍼스널 컴퓨터와 휴대용 컴퓨터의 개념을 정립한 앨런 케이. 그가 고안·디자인한 휴대용 컴퓨터 다이나북의 목업

    '휴대용 컴퓨터'는 1969년 제록스팔로알토 연구센터에 재직하던 앨런 케이(Alan Kay)에 의해 그 개념이 처음으로 구상됐다. 그는 퍼스널 컴퓨터(개인용 컴퓨터, Personal Computer, PC)라는 개념 역시 최초로 구상한 인물로, 객체 지향 프로그래밍과 그래픽 사용자 인터페이스와 같은 인간과 컴퓨터 간 상호작용의 선구자이자 PC의 아버지라 불리고 있는 미국의 컴퓨터 과학자이다. 앨런 케이는 공책 크기의 컴퓨터를 생각해 냈고 이를 실체화하여 '다이나북'(Dynabook)이라 이름을 붙였다. 그러나 당시의 기술로는 혁명에 가까운 그의 개념을 현실화할 수는 없었다.

    이후 1979년 영국 그리드시스템의 윌리엄 모그리지(William Moggridge)에 의해 고안된 실 제품이 탄생하게 된다. 제품명은 '그리드 컴패스(GRiD Compass) 1109'로 역사상 최초의 노트북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이 제품은 340KB의 메모리와 8MHz로 작동되는 인텔의 i80c86 프로세서 기반의 시스템으로 가격은 8,000달러 수준이었다. 실제 이 제품은 1980년대 초반 미국 항공우주국에서 구매, 우주 비행선 프로그램에 사용되기도 했다. 개인용 컴퓨터(PC)보다는 이동 가능한 산업용 소형 컴퓨터로서의 의미가 크다.

    ▲ 최초의 노트북으로 지목되기도 하는 그리드 컴패스 1109(왼쪽)와 그리드 컴패스 1101 (사진=OldComputers)

    1981년에는 대중적으로 성공한 진정한 의미의 휴대용 PC가 탄생한다. 바로 오스본 컴퓨터 회사의 창업주인 아담 오스본(Adam Osborne)에 의해 개발된 '오스본 1 컴퓨터'(Osborne 1 Computer)이다. 비행기 좌석 밑으로 적재가 가능한 붙박이 스크린을 가진 컴퓨터를 원했던 아담 오스본은 5인치 크기의 CRT 디스플레이를 가지고 있는 박스 형태의 오스본 1 컴퓨터를 개발하게 된다. 접히는 형태의 키보드를 접목시켜 가방처럼 휴대가 가능한 구조를 가지고 있어 '최초의 노트북' 또는 '최초의 휴대용 PC'로 꼽히기도 한다.

    오스본 1은 53x24 문자를 표시할 수 있는 5인치 CRT 모니터가 본체에 빌트인 되어 있으며 키보드는 하단부에 여닫는 덮개 형태로, 상단에는 이동할 수 있도록 손잡이가 장착된 여행용 가방의 모습을 하고 있다. 4MHz 동작하는 Zilog Z80 프로세서와 64KB 메모리와 함께 2개의 5.25인치 플로피 디스크 드라이브를 비롯해 패러럴, 시리얼, IEE-488과 같은 당시 주로 사용되었던 입출력 장치를 연결할 수 있는 다양한 포트를 갖추고 있는 등 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노트북의 개념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 특징이다. 여기에 본체의 전면에 장착, 1초에 1bit 전송이 가능한 Osbrne DATACOM 이라는 모뎀이 옵션으로 제공됐다. 휴대는 가능했지만 11kg 수준으로 부담스러운 무게를 가지고 있었다.

    ▲ 11kg 수준이었지만 여행용 가방 형태로 운반이 가능했던 오스본 1 컴퓨터와 메인보드 모습. 오른쪽 위는 옵션으로 제공되었던 Osbrne DATACOM 모뎀 (사진=OldComputers)

    오스본 1은 당시 판매되던 다른 개인용 컴퓨터 대비 다소 부족한 성능을 가지고 있었지만 작업 환경 그대로 가정과 사무실에서 업무가 가능했기 때문에 전문직 종사자들에게 크게 어필하며 시장에서 큰 성공을 거둔다. 특히, 당시 판매 가격은 1,795달러로 꽤 고가 수준이었지만 프로그래밍 언어인 베이직(BASIC), 스프레드시트 프로그램 수퍼칼크(SuperCalc), 워드프로세서 프로그램인 워드스타(WordStar) 등 고가의 소프트웨어까지 번들 제공하는 패키지로 구성해 오히려 이점이었던 것. 오스본 1은 출시 8개월 동안 1만 대가 넘게 판매되었으며, 12개월 만에 매출 7,300만 달러를 기록하는 등 시장에서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직원 2명으로 시작한 스타트업 기업이 1년 만에 3,000명의 직원을 거느림은 물론 오스본 1 출시 이듬해인 1982년 말까지 1억달러 이상의 순 매출을 올리며 승승장구하고 있던 오스본 컴퓨터였으나 몇 개월 후 파산으로 이어진다. 경쟁사의 견제와 더불어 빠른 안착과 성공에 자신한 아담 오스본은 향상된 디스플레이와 성능을 갖춘 후속 제품의 제원을 미리 공개한 것. 이에 소비자들은 더욱 좋아진 신형 모델의 구매를 위해 현재 판매 중인 오스본 1의 구매를 미루는 일이 발생했다. 이 때문에 많은 재고를 가지고 있던 오스본 컴퓨터는 현금 유입이 급격히 줄어들게 되고 결국 매출급감으로 이어져 불과 2년만인 1983년에 파산하고 만다. 이처럼 신제품 출시 전 후속 제품의 정보를 미리 공개해 현재 판매 중인 제품의 매출에 악영향을 초래하는 현상을 '오스본 효과'(The Osborne Effect)라 부르며 마케팅 용어로 쓰이기도 한다.

    ▲ 최초의 휴대용 PC 오스본 1 컴퓨터를 개발한 아담 오스본과 당시 광고 모습

    1982년에는 컴팩에서도 8088 프로세서, 256KB 메모리와 함께 1개의 5.25인치 플로피 디스크 드라이브와 9인치 모니터로 구성된 '컴팩 포터블 PC'를 출시해 주목을 받았으며, 이어 엡손, IBM, 제니스(Xenith)와 같은 기업에서도 이동이 가능한 포터블 PC를 연이어 선보이는 등 휴대용 PC의 대중화가 시작되었지만, 상업적으로는 큰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 그러던 1985년 일본의 도시바에서 현 시대 노트북과 가장 가까운 형태의 효시적인 모델을 선보이게 된다. 그 제품이 바로 '도시바 T1100' 이다.

    T1100은 4.77MHz로 동작하는 인텔 i80C88 프로세서 및 256KB(512KB 업그레이드 가능)의 메모리가 탑재됐다. 31cm x 30cm의 크기, 7cm의 두께, 6kg의 무게를 가지고 있었지만 내장 3.5인치 플로피 드라이브, 83키 키보드와 함께 80자 x 25자 표현이 가능한 640x200 해상도의 4.7인치 흑백 LCD는 폴더 형태로 접었다 펼 수 있어 간편한 휴대를 지원하는 등 혁신적인 평가를 받음과 동시에 현대 노트북의 형태와 개념을 확립한 모델이기도 하다. 옵션으로 14.4kbps의 모뎀을 선택할 수 있었으며, MS-DOS 2.11을 운영체제로 사용했다. 가격은 1,899달러.

    ▲ 현대 노트북과 가장 가까운 형태로 최초의 노트북으로 평가받는 도시바 T1100 (사진=vintag)

    ▲ '노트북'이라는 단어가 처음 사용된 도시바 다이나북 J-3100ss (사진=ameblo)

    1986년 도시바는 세계 최초로 하드 디스크 드라이브를 장착하고 인텔의 286 프로세서를 탑재한 'T3100'을 선보이기도 했으며, 특히 1989년에는 업계에 큰 충격을 던져준 '다이나북(DynaBook) J-3100ss'를 출시한다. 최초의 A4 노트 사이즈 크기에 무게 역시 2.7kg이라는 당시 초경량 무게를 실현한 이 제품은 10MHz로 동작하는 인텔 i8086 프로세서와 최대 3.5MB까지 확장이 가능한 메모리(기본 1MB)가 탑재되었으며, 640x400 해상도의 EL 백라이트 흑백 디스플레이를 탑재하고 있었다. 2,400bps의 모뎀이 내장 옵션으로 제공되었으며, 운영체제는 MS-DOS 3.3이 사용됐다. '노트북'이라는 명칭이 처음으로 사용되었던 다이나북 J-3100ss는 전세계적으로 빅히트를 기록하며 노트북 PC 시대를 본격적으로 연 모델로 평가받고 있다.

    관점에 따라 현대 노트북의 개념을 확립한 T1100을, 또는 노트북이라는 단어를 최초로 사용한 J-3100ss를 '최초의 노트북'으로 평가하는 등 노트북의 짧은 역사는 도시바에 의해 리딩되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도시바는 이후 인텔의 펜티엄 프로세서를 장착한 최초의 노트북인 '테크라 시리즈'를 비롯해 세계 최소/초경량 미니 노트북인 '리브레또 시리즈' 등을 연이어 히트시켰다. 이는 도시바가 한때 '노트북의 강자·왕국'으로 군림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파나소닉, 소니와 함께 일본 산업발전과 함께한 레전드 도시바는 원자력 발전사업의 실패와 회계 부정 및 그릇된 수직적 조직 문화가 주요 원인으로 제시되며, 백색가전·TV·반도체·PC 부문 등 핵심 사업과 기술 모두 타사에 넘기면서 몰락의 길을 걷고 있다.

    ▲ 한시대를 풍미했지만 역사 속으로 사라진 개인용 모바일 기기들. 팜 PDA, 아이스테이션/코원 PMP, 소니 바이오 UMPC, 그리고 UMPC와 서브 노트북 틈새시장을 공략했던 고진샤의 미니노트PC (왼쪽 위부터)

    PDA, PMP, UMPC, MID 등 수 많은 개인용 모바일 기기들이 존재했지만 결국 남은 것은 전통적인 노트북과 휴대폰이다. 한때 주목을 받았던 태블릿PC는 글로벌 시장에서도 감소세에 있는 등 대화면 스마트폰과 초경량 노트북 사이에서 방황하며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는 모양새다.

    스마트폰의 성장세는 무섭다. PDA(Personal Digital Assistant)와 휴대전화가 결합된 기능성을 강조하던 초기의 모습에서, 이제는 다양한 모바일 기술과 결합하며 새로운 형태의 모바일 비즈니스와 서비스까지 등장하고 있다. 성능은 이미 PC 부럽지 않은 수준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의 핵심 인프라 역시 5G 통신이다. 커넥티비티를 앞세운 스마트폰은 관련 산업까지 견인·성장하고 있는 등 새로운 세상을 위한 매개체로 자리 잡고 있다.

    분위기가 이렇다 보니 스마트폰은 PC, 특히 노트북 등을 대체할 수 있는 디바이스로도 주목받고 있다. 그러나 노트북과 스마트폰은 전혀 다른 플랫폼이다. 노트북은 생산성을 위한 도구이며, 스마트폰은 콘텐츠를 소비하고 서비스를 이용하는 도구이다.

    ▲ 노트북의 미래는 이런 모습?···ASUS(에이수스)가 지난 6월 컴퓨텍스 2018에서 공개한 인공지능 탑재 듀얼 스크린 콘셉트 컴퓨터인 '프로젝트 프리코그'(Project Precog). 2개의 디스플레이가 노트북과 같은 형태로 연결되어 있으며, 손이나 스타일러스를 자동으로 인식해 키보드 또는 입력 패드가 나타난다. 책처럼 펼치면 무선 키보드와 마우스를 이용해 듀얼 스크린으로 활용할 수 있다.

    그동안 생산성과 소비성 모두를 잡기 위한 노력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모두에서 있었다.

    노트북 시장은 넷북, 울트라씬, 울트라북, 그리고 컨버터블 PC, 2 in 1 등과 같은 '분류'부터 디태처블, 슬라이더, 플립, 트위스트, 듀얼 스크린 등의 '형태'까지, 생산성은 물론 소비성까지 잡기 위한 다양한 폼팩터로 구분되었지만 결국 전통적인 노트북 디자인과 함께 일반용이냐 게임용이냐로 구분하는 것으로 정리됐다. MP3P, PMP, PDA, UMPC 등과 같은 개인 휴대 정보 단말기 역시 스마트폰으로 귀결되었다.

    마이크로소프트 역시 PC와 모바일 기기의 운영체제(OS)를 통합하기 위하여 윈도우8(Windows 8)을 선보였다. 시작버튼과 바탕화면이 사라진 채 타일 형태로 나열된 새로운 UI는 모바일 기기의 DNA를 윈도우에 성공적(?)으로 이식 했지만, 기존 PC 사용자에게는 전혀 환영받지 못했다. 결국 윈도우10에서는 시작버튼과 바탕화면이 부활하며 이전 모습을 찾았고, 스마트폰에 탑재되었던 모바일 운영체제 윈도우폰(Windows Phone)은 지난해 개발이 공식적으로 중단되었다. 이 외에도 각 사 고유의 OS 등 다양한 시도가 있었지만 결국 애플의 iOS와 구글의 안드로이드가 모바일 OS의 주력으로 자리잡았다.

    생산성과 소비성, 성격을 달리하는 서로의 장점을 흡수하려다 보니 불협화음이 발생하는 것. 각 디바이스에 최적화된 익숙한 사용법과 함께 형태보다는 용도가 우선이다. 소프트웨어의 강자 애플 역시도 iOS와 맥OS를 통합하지 않는 것엔 분명한 이유가 있다. 노트북은 노트북다워야 하고 스마트폰은 스마트폰다워야 한다. 앞서 언급했듯이 수많은 개인용 디지털 기기들이 선보여 왔지만 결국 남은 것은 -새로운 모바일 기기 이전부터 존재해왔던- 전통적인 노트북과 스마트폰이다. 소비성 디바이스와 생산성 디바이스는 분명 궤를 달리한다. 스마트폰 대세에도 노트북이 여전히 잘 나가고 있는 이유다. 일부는 잠식할 수 있지만, 대체는 불가능하다. 노트북의 미래는 여전히 밝다.


    베타뉴스 이진성 (mount@betanew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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