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사설

[칼럼] 디지털 세대로 태어난다는 것


  • 김영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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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 2012-01-09 09:29:58

    결혼해서 아이를 낳아 키우다 보면 하는 흔한 착각 가운데 하나는 자신의 아이가 천재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어머, 이런 것도 벌써 아네!”라는 착각은 [천재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기르는 것입니다] 같은 표어로 부모를 현혹하는 일부 영재 교육기관의 상술과 어우러져 걸음마를 겨우 떼고 우리말도 제대로 못하는 아이들을 학원으로 내몰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데 그런 교육과는 달리, 굳이 천재가 아니더라도 요즈음 아이들이 비교적 공통적으로 예전 세대와는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빠른 습득을 보이는 분야가 있다. 다름 아닌 디지털 기기다.

     

    예를 들어 부모세대로 일부 기능만 쓰고 있는 휴대폰, 특히 스마트폰이 아이들 손에 들어가면 별별 어플에 게임을 깔아두고 설정까지 바꿔 둔 것을 볼 수 있다. 물론 가끔은 엉뚱하게 암호를 걸어두고 자기도 몰라 A/S센터를 찾아야 하거나, 손을 잘 닦지 않아  안 그래도 쉽게 더러워지는 화면이 끈적거리는 부작용은 감안해야 하지만 말이다.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그렇다.

     

     

    아침 뉴스에 소개되는 해외의 인터넷 영상을 보면 아직 기저귀를 차고 있는 아이들이 아이패드를 써서 무엇인가를 하는 행동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그건 그 아이가 천재나 영재여서가 아니라, 터치라는 감각을 이용하는 신형 디지털 기기들이 뭐든지 만지는 아이들의 패턴과 잘 어울린 결과가 아닌가 생각된다. 물론 그렇다고 아이패드를 물고 빠는 것은 안 되겠지만 말이다.

     

    하긴 우리 때만 해도 컴퓨터 학원에서 식상하기 따분한 EDPS 개론 같은 것을 배울 때, 수업에는 별 관심이 없고 키보드만 만지작거리던 친구들이 나중에 길거리 게임기나 오락실에서는 동전 하나로 모든 판을 클리어하는 놀라운 신공을 발휘하던 것이 기억난다. 그렇다고 어느 누구도, 심지어 그 친구 자신도, 그 친구를 천재나 영재라고 하지는 않았다. 지금 태어났으면 프로게이머도 한번은 노려봤을, 놀랍고 신묘한 손놀림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일부에서는 이런 세대를 [Born in Digital], 말 그대로 태어날 때부터 디지털에 익숙한 세대라고 구분하는 모양이다. [Digital Age]나 [Digital Generation]이 태어나서 후천적으로 디지털 기기를 배우고 익혔다면, 이들은 태어나면서부터 말 그대로 널려있는 디지털 기기를 만지고 느끼면서 자라온 세대들이다. 전화가 신기했던 부모와는 달리, 휴대폰을 통화가 아닌 첨단 이동 기기로 느끼며 자랐고, 메신저나 SNS를 통해 “아빠, 저녁에 들어오실 때 치킨 좀 사다주세요”라고 말할 수 있는 세대다.

     

    그들에게 아무리 우리 때는 치킨 한 번 먹기 위해서는 아침부터 아버지의 구두를 닦는다는 등 육체적 노동이 더해졌다고 설명해도 별 의미가 없다. 게다가 실물 화폐가 아닌 신용카드는 물론 다양한 사이버머니가 이미 정착된 세대에 살다보니 경제에 대한 관념도 당연히 다를 수밖에 없다. 이때쯤이면 사실은 의무적으로 썼던 위문편지 대신 이메일로 이를 대신하는 요즈음 세대들에게 “우리 때는 이랬다”는 설교는 별 다른 공감을 주지 못한다.

     

     

    이런 문제에 대한 보다 자세한 연구 등은 이 분야의 전문가들이 할 것이고, 2012년 이 시점에서 무엇보다 걱정되는 것은 다름 아닌 전기다. 지난 가을, 늦더위로 말 그대로 대정전이 된 저녁에, 아이들은 전기가 없는 불편함을 처음으로 제대로 겪었다.

     

    TV도 볼 수 없고, 컴퓨터도 인터넷도 안 되고, 충전이 되지 않은 태블릿도 쓸 수 없었다. 부모 세대가 보일러나 에어컨이 안 되는 것에 걱정할 무렵, Born In Digital 세대는 아니 달리 말해서 [전기 없이 살아보지 않은 세대]는 그들의 부모 세대와는 사뭇 다른 고민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올 겨울도 전기가 그리 넉넉지 않다는 뉴스가 들려온다. 과연 전기 없이 우리 문명이, 우리 삶이 온전히 지속될 수 있을까? 너무 추운 월요일 아침에 불현듯 드는 생각이다.


    베타뉴스 김영로 (bear@betanew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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