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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리뷰] 북한 논란 일으킨 홈프론트, 직접 해보니...


  • 이덕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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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 2011-03-22 17:21:53

     

    “미국은 원래 그랬다!”

     

    미국은 ‘홈프론트’ 같은 게임을 좋아한다. 어떻게 보면 그들은 전쟁을 가장 잘 알면서, 가장 모르는 나라다. 20세기 벌어진 대부분 전쟁에 참전해 수많은 피를 뿌렸음에도, 정착 미국 본토에는 단 한 명의 적군도 발을 들여 놓지 못했다.  

     

    적의 무자비한 공격에 본토가 쑥대밭이 되는 내용의 영화나 게임에 열광 하는 미국인들을 보면 늘 아이러니하다. 질리지도 않는 모양이다. 오히려 때리면 때릴수록 효과는 더 크다. 거대한 자연재해는 기본 옵션이고 독일, 소련, 중국, 러시아, 심지어 외계인들까지... 수많은 적들이 동원되어 본토를 파괴한다. 이런 무지막지한 내용의 영화나 게임이 공장에서 찍어내듯 생산 되지만, 이상하게 나오는 족족 ‘대박’을 친다.

     

    이미 ‘소련의 미국침공’이라는 테마로 개봉해 인기를 모았던 ‘붉은새벽’이 나왔고, ‘독일-일본의 미국 분할 점령’을 다뤘던 공상 소설 ‘높은 성의 사나이’가 그랬다. ‘커맨드앤컨커: 레드얼럿2’에서는 소련이, ‘콜 오브 듀티: 모던 워페어2’에선 러시아가 미국을 박살냈다. 오히려 다른 나라들이 '화들짝 '한다. 레드얼럿2는 중국에서 판매금지 됐고, 모던워페어2는 러시아에서 리콜조치를 당했다.

     

    그들 입장에서 보면 ‘홈프론트’의 황당한 스토리도 일견 이해가 간다. 이제는 새로운 ‘적’으로 임명(?)된 북한의 미국침공을 테마로 한 ‘홈프론트’가 단연 화두다.(사실 이 시점에서 ‘붉은 새벽’의 작가가 ‘홈프론트’의 배경 시나리오를 썼다는 이야기는 그다지 놀랍지도 않다)

     

    <작년 E3 현장, THQ는 행사장에 인민군 복장을 한 모델들을 투입해 광고효과를 톡톡히 누렸다>

     

    그런 탓인지, 미국이 공식지정 ‘불량국가’(아마 미국인 대다수가 지구 어디 붙어있는 지도 모를) 북한이 2027년 미국을 삼킨다는 설정은 우리에겐 ‘충격’이지만 미국인에겐 별로 낯설게 없는 모양이다. 독일-소련-중동-북한 순으로 ‘나쁜놈’만 바뀌었을 뿐이다. 한국에서는 발매전부터 수많은 논쟁을 낳은 휘발성 강한 이 게임이 미국에선 발매 첫날 37만장의 높은 판매고를 보였다. 

     

    THQ가 E3에서 인민군복을 입힌 아르바이트생을 행진시키고, 인공기를 단 차를 무료입장 시키는 프로모션도 엄밀히 따지고 보면 이런 ‘가상 역사물’에 리얼리티를 부여하기 위한 밑밥이었던 셈이다. 그러니 "왜 이런게임이 버젓히 팔리고 있냐"는 어리석은 질문은 하지 않고 게임을 플레이해야 한다. 미국은 원래 그랬으니까.

     

    <한국이 북한에 흡수통일된다는 설정. 그 자체만으로도 불편한 내용이다>

     

    그들에겐 가벼운 유희, 우리에겐 불편한 현실

    ‘홈프론트’의 설정은 당사자인 우리에겐 불편하기 짝이 없는 내용이다. 미국인은 그저 그런 ‘가상역사’로 보면 그만이지만 천안함, 연평도 사태를 겪은 우리에겐 그냥 웃고 넘어갈 문제는 아니다. 게임 속에서 신나게 죽어나가는 북한군은 어차피 ‘또라이 국가’로 찍혔으니 제쳐두고, 졸지에 적화통일의 희생양이 된 남한, 아니 자유대한민국에 사는 우리들에게는 입에서 육두문자가 나올 만한 황당한 설정이다.

     

    실제로 ‘홈프론트’는 게임 내내 우리를 불편하게 만든다. 단순히 북한이 미국과 맞장 뜬다는 내용 때문이 아니다. 그런게임은 이제까지도 많았다. 진짜 불편한 이유는 허구와 실제의 경계가 모호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홈프론트는 영악한 게임이다. 게임자체는 별볼일 없는 B급이지만 주변의 관심은 블록버스터 게임 못잖다. 개발사는 픽션과 논픽션을 그럴싸하게 버무려 ‘황당하지만, 웬지 있을법한’ 가상의 역사를 만들었다.

     

    예를 들어 게임은 미국무장관 힐러리 클린턴의 천안함 관련 발표로부터 시작된다. 이어 김정은이 북한 정권을 계승하고 권력을 잡는다. 여기까지는 사실에 근거한다. 이후 스토리는 자연스럽게 허구로 넘어간다. 2012년 김정일이 죽고 후계자 김정은은 대한민국을 흡수 통일해 한국공화국을 만든다. 

     

    북한은 2차 세계대전 미국의 치를 떨게 했던 일본군처럼 몇년사이에 아시아 전체를 장악하고 미국을 침공한다. 그 과정에서 북한이 EMP탄을 쏴 미국의 전력을 마비시키고, 미시시피강에 방사능 물질을 퍼지게해 본토를 오염시킨다는 그럴싸한 시나리오가 제시된다. 미국은 경제난이 악화되어 스스로 무너지고, 북한의 공격에 속수무책이다. 한반도 사정을 알지 못한 다른 나라의 사람들이 보면 어디가 사실이고 어디가 허구인지 모를 '그럴싸한' 이야기로 포장된다.

     

    실제로 THQ 개발자는 "미국 본토가 전쟁터로 변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라는 가상의 시나리오에서 게임의 컨셉을 잡았다고 한다. 그러나 실제 '전쟁과 평화'를 오락가락하는 남북관계를 생각할때 그들에겐 유희지만 우리에겐 불편한 현실인 것 만은 사실이다. 

     

     

    <위의 힐러리 장관은 실제 인물이지만 북한 김정은 역할은 따로 배역을 썼다. 이처럼 사실과 허구를 적절히 버무려, '황당하지만, 있음직한' 이야기를 만들어 놓았다>

     

    이 뿐만 아니다. 북한이 대한민국을 합병하고 동아시아 패권을 쥔다는 내용은 비록 '허구'라도 지나친 감이 있다. 60년의 분단현실에, 한국전쟁의 비극까지 겪은 우리에게 북한이 남한을 흡수통일 한다는 설정은 거북할 수밖에 없다.

     

    여기에 게임 내내 악당으로 등장하는 조선인민군(KPA)역시 보기 거북하다. 게임은 아이가 보는 앞에서 부모를 총살하고, 도망가려는 시민을 쏴 죽이고, 레지스탕스가 있었던 마을이라고 해서 마을 전체를 폭격으로 쓸어버리는 잔혹한 표현으로 조선인민군의 잔혹함을 강조한다. 문제는 이 조선인민군이 그냥 군대가 아니라 바로 ‘통일한국’의 군대라는 점이다.

     

    게임 내내 들리는 한국어가 비록 북한 억양이고, 여기저기에 인공기가 걸려 있기는 해도 게임설정상 조선인민군은 엄연히 통일한국의 군대로 표현되어 있다. 서방 세계에 비친 통일한국 군대는 잔인한 학살을 일삼는 침략군으로 나와 게임을 하는 내내 불편했다.

     

    자극적인 B급 호러영화를 보는 기분

    일단 불편한 감정을 제처두고, 게임에 관한 이야기에 들어가도  ‘홈프론트’는 좋은 점수를 받기 힘들다. '콜오브듀티'나 '메달오브아너' 등 일류 FPS에 비하면 한참 모자라는 수준이다. 그래서 게이머의 눈을 끌만한 자극적인 소재가 필요했던 모양이다. 손발이 오그라드는 대사와 장면,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액션, 그리고 어설픈 스토리라인 등은 게임이 지향하는 목표가 절대로 A급 게임이 아님을 알려준다. 그냥 잘나가는 B급 게임으로 만족하자는 느낌이 강하다.

     

    <게임을 하는 동안에도 기분은 개운치가 않다. 게임은 북한군이 미국인을 학살하는 장면을 지나칠 정도로 상세히 묘사한다>

    <꽤 긴 시간을 할애해 북한군의 만행을 자세히 보여준다. 곳곳에 피 튀는 장면이 즐비하다>

     

    스토리 라인부터 단순하다. ‘조선인민군의 압제에 시달리는 미국 시민들을 해방 한다’라는 이 한 줄로 스토리 요약이 가능하다. 여기에 한 술 더 떠 ‘전부 다 해방’ 하는 것도 아니고, 한창 재미있겠다 싶을때 후속작을 암시하는 엔딩이 흘러나오며 끝내버리는 '허무함'까지 갖췄다. 마치 두자릿수를 가볍게 넘기는 B급 양산형 호러물과 같다. 오죽하면 ‘홈프론트’를 플레이하는 게이머나 비평가들마다 모두 ‘싱글플레이가 엽기적일 정도로 짧다’라고 입을 모았을까!

     

    <물론 주인공은 미국을 지키는 레지스탕스로 활약한다>

    <엔딩까지 플레이타임이 5시간도 안된다. 한참 재미 있을때 끊어놓고 후속작을 기대하란다. 3류 호러물 시리즈에서 많이 쓰던 방법>

     

    그렇다고 아주 못봐 줄 정도로 조악하지는 않다. 비록 어디서 많이 본 듯한(특히 모던 워페어2) 액션과 연출이 넘쳐나지만, 가상역사를 그럴싸하게 표현한 부분은 높이 살 만 하다. 위압적인 조선인민군의 복장이라든가, 무고한 시민을 처형하는 장면, 레지스탕스 마을에 가차 없는 공격을 퍼붓는 조선인민군의 미국통치 방식은 마치 ‘하프라이프2’의 ‘콤바인’이 생각나게 할 정도로 소름돋게 한다. 적어도 '북한 한테는 절대 지지 말아야 겠다'는 경각심 정도는 각인 시킬 만한 리얼리티다.

     

    멀티플레이, 그나마 건질만하다

    총기 반동이 별로 없고, PC와 콘솔 기종 간에 기복이 너무 심하다는 점을 제외하면, 게임의 그래픽과 사운드는 그럭저럭 봐 줄만한 수준이다. 알맞은 때에 알맞은 폭발효과가 나오고, 적절한 때에 적절한 음악이 흘러나온다. 많은 게임들이 알면서도 지키지 못하는 이 진리를 ‘홈프론트’는 꼼꼼히 챙겼다. 물론 A급 게임들에 비하면 한심한 수준이지만, 이 정도 기본도 못 하는 게임이 지천에 깔려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홈프론트’는 게임으로서 중간 점수는 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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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럭저럭 볼만한 스케일>

     

    그나마 건질 만하다 싶은 건 멀티플레이다. 그냥 대놓고 ‘콜 오브 듀티: 모던 워페어 2’와 ‘배틀필드: 배드 컴퍼니 2’의 특징을 모방해 짬뽕시켜 놓은 개발사에게 감히 경의를 표한다. 미군과 조선인민군간의 정규전을 다룬 멀티플레이에서, 게이머는 적을 사살할 때 주어지는 BP(킬 스트릭의 개념)를 통해 특수 스킬이나 차량을 얻을 수 있다.

     

    <멀티플레이는 국산 FPS를 하는 것 처럼 빠르고 박진감 넘친다>

     

    다만, 멀티플레이가 게임설정과 동떨어져 있다는 부분은 실망스럽다. 조선인민군에게 저항하는 ‘레지스탕스’의 활약을 다룬 싱글플레이와는 달리 멀티플레이는 그냥 정규군간의 대전에 머물러 있다. 싱글플레이처럼 ‘레지스탕스’와 ‘조선인민군’으로 나누어 양측의 특징을 부각시켰다면 훨씬 멋진 멀티플레이가 됐을 것이다. 우리에겐 다소 민감한 설정 때문에 마음 편히 플레이할 수 없는 점은 아쉽지만 게임 자체로는 그럭저럭 적당한 수준이다.


    베타뉴스 이덕규 (press@betanew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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