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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극단으로 가는 게임, 판도라 상자 열다!


  • 이덕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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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 2010-09-15 14:17:09

    9.11 참사 9돌 즈음해 미국에선 테러국을 소재로 한 게임이 나와 시끄럽다. EA가 만든 FPS ‘메달오브아너’는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 시티를 배경으로 미군과 탈레반의 전쟁을 다루었다. 게임 설정부터 자극적이다.

     

    이용자는 미국의 특수부대 일원이 되어 탈레반을 진압하는 내용이다. 그러나 게임 일부내용에서 이용자가 탈레반군을 선택해 미군을 사살하는 내용이 담겨 충격을 준다. 미국이 테러국과 싸우는 게임은 많았지만, 테러집단의 입장에서 미군을 사살하는 게임은 처음인 탓이다.

     

    <탈레반을 등장시켜 논란이 된 메달오브아너>

     

    ▲ 러시아테러 VS 탈레반등장, 판도라 상자 열어버린 FPS 라이벌전

    미국과 전쟁 중인 탈레반은 영화나 게임에서 기피하는 소재중 하나다. 게임 내용이 알려지자 국제적인 비난여론이 들끓었다. 미국 뉴스채널 폭스티브이는 특집기사를 내고 게임내용을 상세히 보도했다. 탈레반에게 아들을 잃은 한 어머니가 방송에 나와 “전쟁으로 가족을 잃은 유족들이 있는데도 테러집단이 미군을 사살하는 게임이 판매된다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고 반대했다.

     

    논란은 아프가니스탄 참전국으로도 번졌다. 영국 국방부 장관은 “탈레반이 영국 병사에게 총을 겨누는 아이디어가 게임 소재로 채택됐다는 게 충격”이라고 비난했다. 미군은 전세계 미군기지 내에서 ‘메달오브아너’ 판매를 금지시켰다. 하지만 비난여론에도 개발사는 발매를 강행한다는 입장이다.

     

    게임 프로듀서 패트릭 리우는 “우리는 전쟁자체가 아닌 군인들의 이야기에 초점을 맞췄다. 미군으로 플레이하는 게임이 많이 나왔다면, 탈레반의 입장에서 전쟁을 바라보는 기회도 주어야 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주인공이 러시아 공황에서 시민들을 상대로 테러를 저지르는 게임도 있는데 왜 우리만 가지고 그러냐며 반문했다. 엑티브전이 만든 '콜오브듀티: 모던 워페어2'를 말하는 것이다. 

     

    ‘콜오브듀티: 모던 워페어2’는 이용자가 테러집단이 되어 무고한 시민들을 학살하는 장면이 나온다. 실제 모스크바 공항을 배경으로 시민을 향해 무차별 총격을 가하는 잔혹한 장면 때문에 러시아의 국민감정을 자극했다. 뒤늦게 사실을 안 러시아는 게임판매를 금지하고, 이미 시판된 물량까지 전량 회수하는 등 강경조치에 나섰다.

     

    필자도 뜬금없이 나온 러시아 스테이지를 보고 적잖이 노랐다. 만약 인천공황이 배경이라면 패드를 던져버렸을지도 모른다. 모스크바 공항 테러 장면은 확실히 도가 지나쳤다. 스토리상 밝히고 넘어가면 되는 내용을 굳이 이용자의 손에 총을 쥐게하고 처참한 학살 현장을 경험하게 할 이유가 없다. 탈레반으로 인한 국제적 고통이 현재 진행형인데 굳이 게임 멀티모드에 그들을 등장시킬 필요가 있었을까? FPS게임을 대표하는 양대 브랜드가 자극적인 설정를 서로 주거니 받거니하고 있다.

     

    <러시아 공황에서 무고한 시민을 학살하는 설정으로 무리를 빗은 콜오브듀티: 모던워페어2>

     

    ▲ 자극인 설정, 게이머는 피로하다

    이처럼 특정국가나 단체를 자극하는 설정이 드물지 않다. 2차 세계대전 태평양 전쟁을 다룬 ‘월드 앳 워’는 일본군을 너무 잔인하게 죽인다는 이유로 일본서 판매금지 됐다. 게임에서 일본군은 화염방사기에 타죽거나 대검으로 찔려 죽는 등 인간이하로 표현되어 일본인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다.

     

    중동전쟁을 다룬 ‘모던워페어’는 아랍인을 극악무도한 악당으로 표현해 사우디아라비아 등 일부 중동국가에서 판매금지 당했다. ‘고스트리콘2’는 북한을 공격한다는 이유로 북한정부와 언론으로부터 거센 항의를 받았다. 액션게임 ‘바이오하자드5’는 아프리카 흑인들이 좀비가 되는 설정 때문에 인종차별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일본 성인게임 ‘레이프레이’는 주인공이 여성을 성폭행하는 내용을 담아 국제여성단체의 반발을 샀다. 여성단체들은 일본 총리에게 항의문을 보내 게임판매 중지를 촉구했다. 비난 여론이 심해지자 게임은 미국 전역 게임 판매상과 인터넷 쇼핑몰에서 전면 판매 금지되기도 했다.

     

    논란이 뻔한 설정의 게임들이 잇따르는 이유는 홍보효과 때문이다. 게임 콘텐츠 일부에 논란의 여지가 있는 내용을 포함시켜 이슈를 끌어내는 방식이다. 대부분 특정국가의 정서를 자극하는 극단적인 내용이 많다. 이런 ‘악명’들은 게임의 인기에 반영되기 마련이다.

     

    러시아 국민의 심기를 건드린 콜오브듀티는 1000만장 이상 팔리는 히트를 기록했고, 메달오브아너도 350만장 넘게 팔려나갈 것으로 업계는 예상하고 있다. 하지만 단발적인 이슈를 끌기 위해 무리한 설정들은 남발하는 건 아닌지 우려스럽다. 이슈는 금방 사그라들지만, 게임을 하고 남은 불쾌감과 상처는 오래 남는다. 자극은 더 강한 자극을 낳기 마련이다.

     

    노이즈 마케팅도 좋지만, 최소한 건드려선 안 될 선을 넘어서는 안 된다. '메달오브아너'에 꼭 탈레반 이라는 '무리수'를 끼워 넣을 필요가 있었을까. 표현의 자유와는 또 다른 문제다.


    베타뉴스 이덕규 (press@betanew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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