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방/인터뷰

3D로 한판 뒤집은 그, 돌아오다 - 한국의 개발자④ 김남주


  • 김태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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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 2010-07-28 16:43:14

    김남주(40)가 돌아왔다. 오랜 잠적을 끝내고 그가 다시 일어섰다. 어떤 직함도 없는 개발자로 돌아왔다. 백의종군하며 초심으로 돌아갔다. 
     
    한국 게임사에 있어 김남주는 개척자다.


    모두가 2D게임에 집중할 때 그는 3D의 가치를 알아봤다. 뛰어난 3D 그래픽 기술을 토대로 그 자신이 생각했던 것을 몸소 실현해 보였다. 그가 개발한 3D 온라인게임 ‘뮤’를 전후로 한국 게임사는 큰 전환기를 맞았다. 세상을 한번 뒤집었기에 그의 행보를 주목할 수밖에 없다.

     

    어렸을 적 꿈은 만화영화 감독


    학창시절의 김남주는 그림 그리는 걸 좋아했다. 성적은 좋지 않았다. 꼴찌나 다름없었다. 1992년 고교를 졸업한 김남주는 대학 진학 대신 인테리어 회사에 취직한다. 인테리어 업무를 잘해보자는 생각에 캐드를 배웠다. 캐드를 통해 컴퓨터 그래픽을 접했다. 그러다 게임을 알게 됐다.


    93년, 하이텔 게임제작 동호회에 가입한 김남주는 한 달여의 개발을 통해 슈팅 게임, ‘이즈미르’를 공개한다. 이 게임이 그의 인생을 바꿔놓았다. 당시 게임 개발 사관학교라 불리던 미리내소프트로부터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온 것. 그렇게 진로를 바꾼 김남주는 훗날 웹젠 설립의 핵심 3인방인 조기용(37, 현 리로디드 스튜디오 대표)과 송길섭(현 위플게임즈 대표)을 만난다.


    97년 터진 IMF라는 된서리는 게임업계도 피할 수 없었다. 줄줄이 게임회사들이 쓰러졌다. 실업자가 된 김남주는 본의 아니게 집에서 ‘폐인’으로 인식됐다. 당시로서는 생소한 ‘게임 개발’을 붙잡고 있는 김남주가 가족들이 보기에 달가울리 없었다.


    인생 2막의 시작, 고생 끝에 낙이 오다


    98년 가을, 김남주는 미리내소프트 시절부터 친하게 지냈던 조기용과 함께 3D 게임을 만들기로 한다. 3D그래픽은 2D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부드럽고 섬세한 연출이 가능했다. 하지만 도박이었다. 당시 국내 PC 하드웨어 대부분이 2D를 지원했다. 3D게임의 수요는 없다시피 했다. 둘 중 하나였다. 선구자가 되느냐, 실패자가 되느냐.


    99년 말, 송길섭까지 합류한 이들은 회사를 차릴 필요가 있다고 의견을 모은다. 미리내소프트서 연이 닿았던 이수영(46, 현 굿맨엔터테인먼트 대표)을 찾아가 자신들의 뜻을 밝혔다. 2000년 5월, 4억 원의 자본금을 바탕으로 웹젠이 설립됐다. 3D게임 개발도 박차를 가했다. 국내 게임 시장에서는 2D그래픽의 ‘리니지’가 엄청난 성공을 거두고 있었다. 저변은 충분했다.


    2001년 5월, 베타테스트를 실시했다. 동접자수가 3만 명에 달했다. 무료 고객 대부분이 유료로 전환하는 경이로운 일이 일어났다. 3D 온라인 게임, 뮤의 탄생이었다. 뮤는 2D그래픽 일색이던 한국 게임시장에 파장을 일으켰다. 새로운 3D 게임의 장을 열었다.
     

    개발자로서 김남주의 혁신은 뮤를 통해 한국 유저에게 친숙한 쿼터뷰 시점을 도입해 당시 3D가 가지고 있던 막연한 괴리감을 없앴다는 점이다. 장비 착용에 따른 외형 변화와 다양한 광원효과 등 3D만의 독특한 그래픽을 선보였다. 가령 뮤의 3D 캐릭터들은 2D게임에서 볼 수 없었던 다양한 감정 표현과 몸동작들을 연출할 수 있었고 이를 통한 커뮤니티 역시 흥미로울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기술혁신은 기존 2D유저층에 3D게임을 처음 접한 신규 유저층까지 모두 확보, 대성공을 향한 발판을 마련한다.


    ‘뮤티즌’이라는 신조어까지 파생시킬 정도로 뮤는 엄청난 인기를 구가했다. 김남주 등 3인방이 써낸 웹젠 신화는 한국에 열풍을 일으켰던 벤처 기업의 진원지가 됐다. 이들의 성공신화는 ‘삼총사’라는 제목으로 드라마화되기까지 했다.


    2002년 9월, 웹젠 대표이사직을 사임한 이수영 전 CEO의 후임으로 김남주가 내정되자, 그는 고졸 출신 개발자이자 CEO로서 다시 한번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웹젠은 2003년 코스닥과 나스닥에 잇따라 상장했다.

     

     

    뮤 성공, 그 이후

     

    뮤라는 하나의 타이틀에만 치중하면 됐던 소규모 개발사 웹젠은 어느새 대형 상장사가 됐다. 웹젠 대표로서 김남주는 게임 개발 외에도 여러가지 업무를 소화해야 했다. 개발자로서의 자질보다 경영자로서의 능력이 더 요구되던 시기였다. 여기서 김남주의 평가가 엇갈린다. 개발자로서의 김남주는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훌륭하지만, 기업 경영자로서의 그의 자질은 적절치 않다는 것이다.


    거대해진 웹젠은 동시에 많은 게임 프로젝트들을 시작하긴 했지만 이들을 효율적으로 조율하지 못했다. 이는 지속적인 게임 출시 연기라는 결과로 나타났다.


    뮤의 후속작으로 개발되었던 ‘썬(2006)’은 1년이나 발매를 연기한 끝에 겨우 출시됐지만 만족할 만한 성적을 거두지 못했다. ‘위키(2005)’, ‘헉슬리(2008)’ 등도 당초 웹젠이 발표한 시기보다 1년 가까이 지연됐다. ‘일기당천’, ‘파르페스테이션’ 등은 개발이 중단됐다. 특히 국내 최초 플레이스테이션3용 타이틀로 기대를 모았던 ‘엔드리스사가’마저 엎어지자 웹젠은 시장과 투자자들의 신뢰성을 잃었다.
     

    그 와중에도 김남주는 웹젠이 세계적인 게임사로 거듭나기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았다. 2005년, 영국 유명 게임 개발사 리얼타임월드가 개발한 온라인 게임, ‘APB(All Point Bulletin)’의 개발을 지원하며 전세계 판권 계약을 체결해 화제를 모았다. 그러나 이 시도는 아쉽게도 불발로 끝났다. APB의 개발이 늦춰진데다가, 300억 원이라는 대규모 추가 투자비용의 리스크가 결코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모험보다 안정을 택한 웹젠은 2008년, APB 전세계 판권을 포기하고 APB 상용화 이후 3년간 발생 매출의 15%를 지급받는 방향으로 재계약을 체결한다.


    2006년, 웹젠은 ‘월드오브워크래프트’의 핵심 개발자들이 설립한 ‘레드5스튜디오’가 개발하는 MMORPG,‘T프로젝트’를 퍼블리싱한다고 발표해 또다시 화제에 올랐다. 웹젠은 T프로젝트의 개발비를 투자하는 조건으로 5년간 전세계에 서비스하는 판권을 확보했다. 하지만 이마저도 용두사미로 끝났다. 2009년, 레드5스튜디오에 250억 원이라는 거금이 투자된 시점에서 추가 지원 해야 할 개발비의 수지타산이 맞지 않자, 개발비 투자를 중단하는 대신, 북미•유럽 지역의 판권을 개발사인 레드5스튜디오에게 넘겼다. 동시에 웹젠 글로벌화의 첨병이던 ‘웹젠 아메리카’가 폐쇄되면서 많은 구설수에 올랐다.


    이 과정에서 김남주와 함께 웹젠을 창업했던 조기용, 송길섭은 회사를 떠났다. 김남주는 혼자서 이 문제들을 떠맡아야 했다. 빗발치는 비난의 여론 역시 모두 그에게 날아왔다. 2008년, 직원을 대량으로 해고하며 비용 절감 등 조치를 취했지만 때는 이미 늦은 뒤였다. 급기야 고졸 출신 CEO라는 학력 역시 도마 위에 올랐다. 김남주는 회사에 입힌 경영적 손실을 책임져야 했다. 2008년 9월, 웹젠의 경영권을 NHN게임스에 매각한 그는 이듬해 회사를 떠났다.

     


    사라진 줄 알았던 스타 개발자, 홀연히 복귀하다

     

    2010년, 홀연히 사라졌던 김남주는 게임업계로 복귀한다. 1년 8개월만의 회귀였다. 신생 게임개발사 ‘브리디아인터렉티브’를 새로이 설립, 본업으로 돌아왔다. 웹젠 시절 최 측근이던 김형철 전 CEO, 강기종 PD 등 예전 인사들도 그와 함께 했다.


    새로운 개발터에서 김남주는 CEO를 맡지 않았다. 어떤 직함도 없이 일반 개발자의 자리였다. 업계는 웹젠의 전철을 되따르지 않겠다는 김남주의 의지가 반영된 것이라고 풀이했다.


    브리디아 인터렉티브는 현재 위메이드 엔터테인먼트와 함께 ‘프로젝트 다빈치’라는 3인칭 슈팅게임(TPS)을 개발 중이다. 프로젝트 다빈치가 어떤 모습으로 플레이어에게 다가올지 기대가 된다. 절치부심(切齒腐心)한 김남주의 복귀작이기 때문이다.   
     

    과거 뮤를 즐겼던 사람들은 김남주의 이름을 잊지 않았다. 그의 복귀를 환영했다. 그가 어떠한 게임을 만들든, 사람들의 기대와 관심을 한 몸에 받을 수밖에 없다. 한때 한국 게임시장을 양분했던 거장 중 한 사람이었다는 사실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김남주는 게임 업계에 큰 파장을 예고하고 있다.

     

    김시소 <플레이포럼> (playforum.net)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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